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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 생명의 연대 글보기

빅터 로스차일드와 캐임브리지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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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로스차일드는 2 차 대전기와 냉전 시대 로스차일드 가의 가장이었고, 비밀리에 세계를 다스렸던 숨은 황제였다. 공식적인 직업은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물학 교수였지만, 무대 뒤에서는 냉전 체제를 만들고 이를 통치한 세계 비밀 정부의 최고 실세였다.

 

그는 영국군첩보부인 MI6의 요원이었지만, 비밀리에 캐임브리지 대학의 동료 교수 4인과 함께 케임브리지 5일방을 구성하여 KGB의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소련을 탄생시키고 조종해 온 로스차일드 가의 수장으로서 그는 핵무기 기술을 소련에 전달하여 2차 대전 후 전후 세계 냉전체제를 도입하였으며 이스라엘을 수립하여 중동을 통제하는 지렛대로 삼는 한편 장래의 신세계 질서의 수도로 삼았다.    

 

Rothschilds Planned to Make Britain Communist
April 25, 2012

blunt.jpg


(left, Anthony Blunt 1907-1983, Queen's cousin and curator of her art until he was outed as a Soviet spy in 1979. The traitors were Kim Philby, Donald Maclean, Guy Burgess and Anthony Blunt.)

Victor Rothschild, the mystery fifth man, recruited and placed
four influential spies to help him subvert the UK. They were known as the "Cambridge Five." 


Former intelligence asset T. Stokes says modern Britain reflects the Rothschilds' plan for Communist tyranny.

 

 

by T. Stokes
(henrymakow.com)

The role the Cambridge traitors like Anthony Blunt played played in bringing Britain into W W II on Communism's side will be revealed in a new book which cannot yet be identified.

The new book should reveal how and why Communist recruitment teams were allowed to flourish in the British Universities. This is related to generous bequests from Victor Rothschild.

RothschildVictor.jpg


(Victor Rothschild, 1910-1990, in a Masonic pose)

The Cambridge Apostles were working for the time when Britain was ruled by the Communist system, maybe under another name but still communist and they were promised positions of great power.

 

Britain was to undergo many of the hardships of the Russian people, such as unemployment, starvation, loss of national rights and stature; the elimination of Christianity and the extinction of the Royal family as in France and Russia, and the installation of multiculturalism and loss of national identity.

Stalin played this constantly inside the Soviet Bloc pitting one race against another, and according to the book "The Great Terror" murdering as many as 63 million of his captive people, or useless eaters he called them.
(See Oleg Bzorski document "Stalin's Long March to Britain ".)

The English race was to be phased out similar to Germany; no Anglo Saxons would exist in 80 years. Prison camps for dissidents would dot the British countryside.

All the Cambridge traitors felt that Britain was failing fast and this was their only hope.

Anthony Blunt believed what Rothschild told him, that the wealth and artworks of the royal family would be confiscated and Buckingham palace would become a museum for the people.

He would build a huge art museum in Jerusalem or Tel Aviv called the Sir Anthony Blunt Institute.  There would be marble floors and a special Poussin section where Blunt could give talks on his favorite French painters.

 


Rothschild told him that he was working to build financial power blocks.

Britain would go into the EU, gradually the number of world power blocks would be reduced and left with a one-world-currency one world army and one world government controlled by the Zionists based in Jerusalem.

The Cambridge traitors were untouchable. They did not realize that Russia was the Trojan horse which the Rothschilds had been running since 1917. Their largely completed goal: to take over the world.

 

(다음은 한울 출판사에서 최근에 나온 책으로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소련의 정보 기관원의 시각으로 케임브리지 5인방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케임브리지 5인방의 실체와 그들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소개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l9788946046832.jpg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 흐름을 바꿔놓고 세계정치에도 깊은 잔영을 드리운 소련 KGB의 전설적 첩보망 ‘케임브리지 5인방’을 기록한 책이다. 실제로 공작관으로 활동하며 저자가 겪었던 일들, 케임브리지 5인방과 접촉하며 느꼈던 그들의 인간적인 요소, 그리고 소련으로 도피한 3인의 말년까지 담겨 있다. 이 책이 속한 분야정치/사회 > 국방/군사 > 국방/군사일반

저자소개 위로
저자 : 유리 모딘 저자 유리 모딘(Yuri Modin)은1922년생. 1944년 KGB에 입사해 KGB 정보학교 교수로 퇴임. KGB 근무 동안 세기적 첩보망 ‘케임브리지 5인방’ 운용.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주 영국 소련 대사관에 파견. 기타 수차 영국 방문, KGB 관련 업무 수행.
역자 : 조성우 역자 조성우는 한국외국어대학(러시아어), 영국 런던대학(소·동구학). 주 러시아 KOTRA 무역관, 주 러시아 한국 대사관.

목차 위로
옮긴이 서문
서문을 대신하여

01. 런던, 1948년 2월
02. 나의 KGB 입사
03. 채용
04. 그늘 속의 사람들
05. 런던에서의 접촉
06. 경보
07. 마지막 게임
08. 세 명의 소련 시민
_. 에필로그
책속으로 위로
우리는 대단히 실용적인 ‘선발 절차’를 고안해냈다. 런던에 모두 서른 명 남짓의 공작원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똑같은 한 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능력껏 작업했고, 각자가 보내온 자료는 분석을 위해 넘겨졌다. 우리는 각 공작원의 능력을 서로 비교해 그들을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전체 인원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다섯 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머지 스물다섯 명이 보내온 자료는 이들 다섯 명의 것과 비교할 때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는 대단히 실용적인 ‘선발 절차’를 고안해냈다. 런던에 모두 서른 명 남짓의 공작원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똑같은 한 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능력껏 작업했고, 각자가 보내온 자료는 분석을 위해 넘겨졌다. 우리는 각 공작원의 능력을 서로 비교해 그들을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전체 인원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다섯 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머지 스물다섯 명이 보내온 자료는 이들 다섯 명의 것과 비교할 때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KGB정보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할 때, 나는 청강생들에게 그 당시 우리가 취한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냄비가 있다고 합시다. 요리사는 그 안에 여러 종류의 음식 재료를 넣어 요리를 만듭니다. 냄비를 작은 불에 얹어서 한두 시간가량 끓이면 냄비에는 필요한 것, 즉 진국만 남게 되죠.”
바로 그렇게 우리는 런던의 모든 공작원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공작원들을 선발했다.
KGB에서는 이들을 ‘케임브리지 5인방Cambridge five’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이들을 단단히 묶는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이들 각각은 성격과 습성이 독특했다. 거의 모두가 서로 친분은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제공해온 정보는 내용이 아주 충실한 동시에 간결해, 지도부는 ‘5인방’의 문서만 담당하는 번역가를 지정했다.
그 번역가로 지목된 것이 바로 나였다. 1944년 내가 막 스물두 살이 됐을 때의 일이었다.(03. 채용, 53~54쪽)

케른크로스는 우리에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 문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독일 탱크인 ‘티거Tiger(독일어로 호랑이)’에 대한 기술적 자료였다. 1942년에 제작된 이 탱크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의 세 번째와 마지막 공격 때 처음 대규모로 투입됐다. 이 탱크의 주요 특징은 장갑裝甲이 우리 포탄으로는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두텁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소련이 이 신형 탱크를 막을 힘이 없다고 확신했다. 케른크로스가 보내준 문서들 덕분에 소련은 강철의 질과 장갑의 두께를 연구한 뒤, 티거를 무찌를 수 있는 포탄을 만들 수 있었다.
1943년 7월, 프로호로프카 근교 쿠르스크에서 벌어진 대규모 탱크전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틀 동안 지속된 혈전에서 2,000대의 탱크가 맞붙어 싸웠는데, 이 전투에서 소련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존 케른크로스 덕택이었다. (04. 그늘 속의 사람들, 153~154쪽)

한국전쟁의 시작과 함께 소련 앞에는, 미국이 이 세계적인 분쟁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버티고 서 있었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 날인 6월 25일, 버제스와 맥클린은 대단히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버제스는 자신이 직접 주석을 단 비밀문서를 보내왔다. 그는 영국 정부의 시각과 군사행동의 확대 가능성을 손으로 직접 써서 문서에 보충했다.
맥클린 역시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왔다. 그는 미국과 관련해 낙관론과는 거리를 멀리하면서,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 ‘위험하고 해롭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으로는 맥클린이 그때 처음 공개적으로 자신의 반미주의를 드러냈던 것이다.(06. 경보, 248~249쪽)

버제스와 맥클린의 탈주는 영국 정부를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공무원 수백 명이 정치적 신뢰성에 대한 검증을 받았다. 특히 정보 분야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거나 한때 거쳤던 사람들이 특히 주목받았다. 언론은 “모두 체포하라!”라고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요구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보탰다. 특별히 표적이 된 사람들은 1930년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며 좌익 사상에 심취했던 모든 고위 공직자였다.
이것으로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버제스와 맥클린을 알고 지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MI5에 불려 갔다. 블런트를 포함해 과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수백 명의 대학 친구들이 신문에 처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잘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07. 마지막 게임, 287쪽)

킴 필비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첩보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첩보망의 마지막이자 가장 뛰어난 망원이었다. 소련의 비밀기관은, 외국 정부에서 최상위급 직위에 있으며 귀중한 첩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는 데 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했다. 더욱이 여러 해 동안 그들과 작업해온 가운데 누구도 피살되지 않았고, 비난은 받았을지언정 체포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증거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빛나는 성공은 행운과 전문가 기질이 서로 균형을 맞춰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그들과 큰 위험이 따르는 정기 접선? 
출판사 서평 위로
첩보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스파이‘케임브리지 5인방’ 그들이 쌓은 비범한 희대의 행적, 그 진실을 밝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재학했던 귀족 등 영국의 최상류층 젊은 수재 5인! 그들은 이상(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소련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에게 실패란 없었으며, 비난은 받았을지언정 체포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증거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첩보사에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자취를 남겼다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승리, 원자폭탄 개발, 김일성 남침 계획 승인… 이 역사적 사건들의 뒤에는 ‘케임브리지 ... 
첩보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스파이‘케임브리지 5인방’
그들이 쌓은 비범한 희대의 행적, 그 진실을 밝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재학했던 귀족 등 영국의 최상류층 젊은 수재 5인! 그들은 이상(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소련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에게 실패란 없었으며, 비난은 받았을지언정 체포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증거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첩보사에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자취를 남겼다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승리, 원자폭탄 개발, 김일성 남침 계획 승인…
이 역사적 사건들의 뒤에는 ‘케임브리지 5인방’이 있었다!

20세기는 첩보와 공작이 치열한 세기였다. 정보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로서, 양차 대전과 냉전이 벌어지는 동안 각국은 상대국의 정보에 촉각을 기울였으며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스파이를 포섭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포섭된 스파이의 활약은 비단 전쟁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구도를 바꾸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포섭되었는지, 어떻게 활동했는지, 그들의 말년은 어땠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 흐름을 바꿔놓고 세계정치에도 깊은 잔영을 드리운 소련 KGB의 전설적 첩보망 ‘케임브리지 5인방’에 대한 기록이다. 이미 한국전쟁의 발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잘 알려진 킴 필비를 비롯해 가이 버제스, 앤서니 블런트, 도널드 맥클린, 존 케른크로스는 소련이 힘써 이들을 포섭한 것이 아니라, 이상의 실현을 위해 이들이 먼저 협력했다는 점에서 여타 스파이들과 차별적이다. 심지어 이들은 영국 사회의 최상류층 출신이었고 계급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들 ‘케임브리지 스파이’의 존재가 밝혀진 뒤 영국 사회에서 일어난 논란은 계속됐으며, 영화·드라마·소설에서 이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케임브리지 스파이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소련 KGB 공작관이 기록한 ‘케임브리지 5인방’의 이상과 공작활동
무엇보다도 이 책이 여타 관련 도서와 다른 점은 영미권의 작가가 아닌, 소련 KGB의 공작관이 이들을 담당하며 조사했던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했다는 점이다. 케임브리지 5인방의 신화적인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를 다룬 책은 수없이 발간됐다. 이들 책의 작가들은 비밀이라는 사건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실상은 상상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유리 모딘은 이 첩보망의 본격적 활동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첩보망이 붕괴할 때까지 이들을 전담했고, 실제로 주영 소련대사관에 수차 파견되어 십여 년간 직접 조종 관리해 공작을 운영해온 사람으로 명실공히 누구도 케임브리지 5인방에 대해 이 사람보다 더 잘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케임브리지 5인방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공작관으로 활동하며 저자가 겪었던 일들, 케임브리지 5인방과 접촉하며 느꼈던 그들의 인간적인 요소, 그리고 소련으로 도피한 3인의 말년까지. 저자 역시 공작관으로서 정보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케임브리지 5인방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데 이만한 기록이 또 있을까?

세계 첩보사상 전무후무한 KGB의 성공적 공작망
영국 내 최고 인텔리들의 소련 협력 활동, 그 생생한 기록
이 책은 20세기 첩보사에 전설적인 자취를 남긴 ‘케임브리지 5인방’에 대한 기록이다. 킴 필비, 가이 버제스, 앤서니 블런트, 도널드 맥클린, 여기에 존 케른크로스까지, 이들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재학 중인 귀족 등 영국 사회 최상류층 출신의 젊은 수재들로서 이상에 불타 사회적 모순과 투쟁한다는 지극히 순수하고 순진한 열정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첩보사에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자취를 남기며 소련에 봉사했고, 그 영향은 현대사에 깊게 남았다. 이들의 활동이 개인적인 이상에 그치지 않고 조국 배신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유념할 만하다. 이 책은 이들의 조국인 영국 측의 시선이 아닌, 소련 측 KGB 공작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다른 관련 도서와 차별적이다. 

4 Comments

두발님의 댓글

  두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빅터 로스차일드는 외아들로 3 명의 누이들이 있었다고 되어 있네요.
말씀하신 5 형제의 아버지는 독일의 게토에서 5 형제를 훈련시킨 암젤 로스차일드인 것 같습니다.
빅터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가의 세 번째 바론으로 소개되어 있고 아버지는 찰스라고 합니다.

산책님의 댓글

  산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그렇군요...로스차일드가 많군요..지난 번 돈의 힘 5부작인가에서 로스차일드 하나가 나와서 인터뷰하더라고요.
두발님 혹 시친의 지구 연대기 읽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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